한국인 없는 일본 여행지 1탄 고구려 마을 코마혼고(高麗本鄕)2
한국인 없는 일본 여행지 1탄 고구려 마을 코마혼고(高麗本鄕)2
고려신사 코마진자(高麗神社) 상
친절한 택시기사 아저씨덕에 단 5분만에 코마진자에 도착했다. 요금은 820엔. 사실 난 이 택시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것 같다. 이날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이 택시일 가능성이 많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휴...미치겠다..최신 삼성핸드폰을...그것도 일본땅에서...
코마진자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10년이후 수나라는 3번의 고구려 원정에 모두 실패하고 전쟁으로 인한 손실로 나라가 망한다. 그 뒤를 이은 당도 642년부터 세 차례 고구려 원정을 오지만 모두 실패한다. 하지만 나당 연합군은 660년 백제를 쳐서 결국 백제가 망한다. 665년에는 연개소문마저 죽고 고구려는 연개소문 아들들이 벌이는 골육상쟁에 풍전등화가된다. 666년 고구려는 이웃 국가인 일본에 사신을 보내 긴급한 동북아 정세를 알리게 되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고구려왕족인 약광 (若光)이라는 인물이다. 하지만 약광은 667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망하게되자 고구려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된다.
이후 약광은 고구려와 백제 멸망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이른바 도래인들을 이끌게 된다. 나중에 일본에서 관료로서 출사하여 왕(王)이라는 성씨를 하사 받기도한다. 일본은 당시 도래한 다른 국가의 왕족에게만 왕이란 성을 하사했다고한다. 일본조정은 716년에는 현재의 관동지방 여러곳에 걸쳐 흩어져살던 고구려,백제인들을 한군데 모아 현재의 코마지역에 코마군을 설치하는데 이때 약광이 초대군장을 지낸다. 이후 약광이 죽고 난후 약광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코마진자를 짓게되었는데 현재까지 약광의 56대손이 약 1300년간 코마진자의 궁사를 맡아오고있다. 약광은 사후 고려왕으로 불리우게된다. 우리는 왕건이 세운 고려와 구분을 위해 고구려라고 부르지만 원래 고구려의 이름은 고려이고 당연히 일본도 고구려를 코마(고려高麗)로 불렀다.
저 치노와는 며칠전 우에노공원의 화원신사에서 본것과 비슷.
주차장 입구에서 본 코마진자. 장승이 서있었다. 주차장 규모로 이 신사가 꽤 큰 신사에 속한다는걸 알수가 있었다.
일본신사면 어디나 있는 손 씻는곳. 물마시면 안되요.
본당으로 가는길은 양옆에 유명인사들의 식수한 나무들이 늘어선 길이었다. 일본정계의 거물들이 식수한 나무가 많다. 일본정계에는 이 코마진자가 아주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 있다고 한다. 코이즈미 총리도 이곳을 다녀간 뒤 총리가 되었다고.
망국의 한을 품고 죽은 고구려 왕족 약광(나중에 고려왕으로 불리웠다)을 모신 신사에 또 다른 망국의 한을 가진 영친왕 부부가 식수한 것을 보니 두 가지의 슬픔이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착잡해져왔다.